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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그동안 갖고 있었던 Kenko SE120을 방출하였습니다. 약 5년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경통을 찍은 사진이라곤 중고 매물로 올릴 때 찍은 게 전부입니다. SE120을 내보내게 되면서, 갖고 있었단 기록을 남겨봅니다.

Kenko SE120 경통. 초점거리가 짧아서 생각보단 아담합니다.



10여년 전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망원경으로 별을 볼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너무 스트레스 받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시간을 내서 장비를 들고 나가기에 너무 지쳐있어서 별보는 일이 줄어들었죠. 그렇게 오랫동안 별을 보지 않았고, 5년 전 갓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전의 모 출연기관에서 박사학위 주제에 관해 발표할 일이 있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해는 저물었고 기차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보다가 문득 다시 별이 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그날 중고ㄴㄹ에 Kenko SE120 매물이 올라왔고, 제가 내릴 기차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경통 하나 가격이 딱 세미나 연사료 수준이었고, 그렇게 냉큼 집어왔습니다.

SE120은 참 재미난 경통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렌즈 설계를 했을까 싶습니다. 굴절망원경치고는 작지 않은 120 mm 구경인데, 아크로메틱(achromatic) 렌즈입니다. 아포크로메틱(apochromatic)이 아닙니다. 아크로메틱, 뭐 그럴 수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초점거리가 600 mm 밖에 안되는 f/5의 아크로메틱 렌즈입니다. 그렇다고 렌즈 재질이 저분산 ED렌즈를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최초 설계자는 정말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구경 120 mm의 무려 f/5의 Achromatic 렌즈. 분명 최초 설계자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색수차 엄청 납니다. 제가 다뤄봤던 망원경 중 가장 색수차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릴적 60 mm 작은 굴절망원경보다 색수차가 심했습니다. 달을 보면 달 경계에 보라색 빛이 보입니다. 밝은 대상을 보면 색이 퍼진 것이 보이고, 칼날같이 선 초점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점부터 이야기 했으니 단점을 더 이야기해보면, 포커서가 정말 안좋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저가의 장난감 수준의 포커서는 아니지만, 요즘의 듀얼스피드 포커서를 생각하면 부족함이 많습니다. 직각프리즘이나 아이피스 연결도 아쉽고, 포커서가 약간의 유격이 있습니다. 게다가 파인더 슈에 결합되는 파인더 지지대가 정말 대충 만들었는지, 파인더를 잡으면 쉽게 떨어져 나옵니다.

기본 파인더. 파인더 링 아래 Shoe와 결합되는 부분이 나사를 잡아줄만한 부분 없이 평면입니다. 파인더를 손으로 잡고 살짝만 힘을 줘도 경통에서 그냥 분리됩니다.



저는 본래의 파인더 지지대 및 파인더를 사용하지 않고 레드닷(red dot) 파인더를 사용했었습니다. 포커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네요. 외국 유저들의 글을 보면 GSO 듀얼스피드 포커서로 교체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정말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근데, 포커서 가격이 경통 중고 가격의 절반 이상이 됩니다. 굳이 이 저렴한 경통에 돈을 투자해야하는가 고민이 됩니다.

그럼에도 재미난 경통입니다.
일단 120 mm 구경의 굴절이 중고가로 30만원 이하에 형성됩니다. 정말 저렴한 축에 속하죠. 저렴한 가격에 120 mm 구경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단점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구경이 크고 초점거리가 짧으니 화각이 시원시원합니다. 25 mm 이상의 접안렌즈를 껴놓고 보면 넓은 영역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파인더로 대충 대상 하늘로 망원경을 향하면 대강 망원경 시야에 대상이 들어옵니다.

색수차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밝은 행성과 달, 일부 정말 밝은 별을 볼 때에나 크게 신경 쓰이지 어두운 딥스카이 대상을 바라볼 때에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어두운 대상에도 분명 색수차는 있습니다. 근데 크게 의식이 될 정도는 아니다 정도 입니다.

사진을 찍을 것도 아니고, 경위대 가대에 올려놓고 마음 편히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기에 정말 재미난 경통입니다. 아크로메틱이라는 단점 덕분에 렌즈 구성이 단촐하여, 120 mm 구경의 굴절임에도 렌즈 무게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경통이 쇳덩어리인지 경통 무게는 좀 있는 듯...)

얼마 전 새로 들인 경통이 6인치 슈미트-카세그레인이라, 서로 영역이 많이 다르기에 계속 가지고 있고 싶었습니다. 근데, 보내줘야죠. 어차피 망원경을 들고 나가더라도 하나만 들고 나갈테고, 방 안에 컴퓨터 및 주변기기, 책장, 삼각대 가방, 경통 보관상자, 3D 프린터까지 이것저것 있는 상태에서 경통 상자가 하나 더해졌으니, 책상 하나만 사용하는 아내에게 미안함이 가득하네요. 

분명 언젠가 아쉬워 할 것 같은 경통입니다. (지금도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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