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셀레스트론의 6SE를 영입했습니다. 셀레스트론사의 슈미트-카세그레인이 어느 것은 숫자SE, 어느 것은 C숫자 등으로 이름이 다르게 붙어있어서 헷갈리기도 한데, 6SE는 외팔 경위대에 붙어있었던 모델입니다. 어느날 저녁, 인터넷에 중고로 저렴하게 올라온 것을 보고선 아내에게 정말 갖고 싶었던 망원경이라 이야기하고, 주말에 바로 들고 왔습니다. 성능이나 용도를 떠나서 어릴적 갖고 싶었던 것을 잊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갖게 되어서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끔 하는 녀석입니다.
천체망원경을 처음 갖게 되었던 것은 95년 일본 빅센사의 60 mm 굴절망원경이었습니다. 그보다 1년 전 94년 여름에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에 충돌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린 국민학생(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기 전)이었는데 과학잡지를 보며 열광했고,그 당시 부모님에 떼를 써서 처음 천체 망원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비쌌습니다. 당시에 35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화폐가치를 계산해보니 21년 기준으로 거의 70만원 돈이었네요. 10살 남짓한 어린아이에게 과분한 장남감이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제게 그 망원경을 사주시기 위해 얼마나 생활비를 아끼셨을까요. 요즘과 비교해보면 1~20만원짜리 망원경이 그 당시 망원경보다 더 좋을 겁니다. 하지만, 철없던 저는 망원경을 갖게 되고 마냥 신이 났었습니다.
근데, 90년대 중반이라고 해도 서울 아파트촌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행성이었죠. 아직도 그 작은 망원경으로 봤던 토성과 목성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실은 그걸로 봐야 볼펜으로 점 하나 찍어 놓은 수준밖에 안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열광했었습니다. 그게 밤하늘을 동경하는 계기가 되었었고 막연하게 천문학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빅센 60 mm 굴절은 사진으로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학 입학할 쯤이었나, 중학교 친구가 정말 보고 싶다고 해서 빌려주곤, 그대로 제 손을 떠나버렸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오밤중이면 학교 과학실에 매일같이 나갔습니다. 학교에는 다카하시 MT-130+EM2가 있었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백두산?이라고 불리던 4인치 장초점 굴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툭하면 친구들이랑 학교 뒷산 운동장에 올라가서 별을 보곤 했었습니다. 다카하시 MT-130으로 본 목성과 토성은 어릴적 함께 하던 60 mm 굴절과는 다르게 선명한 행성을 보여줬습니다. 고교시절 학교 경비 아저씨한테 많이 혼나가며, 매일 과학실에서 망원경을 들고 나와 별을 봤었고 그게 천문학자가 되는 길이라 착각 아닌 착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취미였죠.
아마 그 시기 쯤 근처로 기억합니다.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뭐 한밤중에 온도가 낮은 천문대에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오레오 쿠키를 즐긴다고 해서 그런 제목이라나, 암튼 천문학 관련 인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앞서 제게 밤하늘을 열광하게 했던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유진 슈메이커와 케롤린 슈메이커 부부 이야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버나드 슈미트가 외팔로 슈미트 카메라의 보정판을 개발한 일화도 있었습니다. 굴절과 뉴턴식 반사망원경만 생각하던 제게 슈미트-카메라는 정말 생소한 것이었고, 그것의 변형인 슈미트-카세그레인 망원경의 "복합식"이라는 수식어는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슈미트-카세그레인 망원경을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갖고 싶은 것을 실제로 갖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듯 합니다. 천문학과를 지망하던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천문동아리 활동도 하긴 했지만 술 마시고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고, 학생회 활동과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여름 방학, 학사경고에 따른 학점을 메우기 위해 계절학기를 들었고, 계절학기가 마칠 무렵 천문동아리 선배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천문대에서 알르바이트 해볼래?" 냉큼 가방을 싸고 강원도 모 천문대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두달 가량 있었었는데, 이것저것 많이 다뤄봤었습니다. 당시 민간 관람용 망원경으론 가장 컸던 망원경도 다뤄보고, 보조 관측실에 있던 각종 망원경들을 다룰 기회가 생겼었죠. 그때 처음 슈미트-카세그레인을 다뤄봤습니다. 크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C11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끔 설치된 망원경들의 위치를 바꿀 때면 무겁더군요. 제꺼도 아닌 것을 혼자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녀석이었습니다. 당시 학교 선배가 C6을 갖고 있었는데, 6인치급은 아담하니 가볍게 보기에는 좋아보였습니다. 나중에 슈미트-카세그레인을 산다면 6인치급으로 하나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이때 가졌습니다.
천문대에서 짧은 기간 이것저것 망원경을 원없이 다뤄보고 하산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알르바이트비를 어디에다 쓸까 고민을 합니다. 슈미트-카세그레인을 사기에는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대도 없이 여차하면 돕소니언으로 만들어 쓰자는 생각에 8인치 뉴턴식 반사망원경을 구매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큰 구경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스카이와처가 아닌 신타라는 이름으로 망원경이 나오고 있었는데, 용달블루 색깔에 가까운 신타 8인치 반사망원경은 정말 무거웠습니다. 서울 북서쪽의 모 가게에서 구매해서 경통 상자를 들고 본가인 용인까지 가는 길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친구에게 빌려온 작은 eq 가대에 간신히 올려서 간간히 보곤 했었는데, 집 근처 공터까지 카트로 끌고 다니면서 광축이 크게 틀어져 일단 방치해놓고 군입대를 하였습니다.
제대 후, 복학한 후에는 학생회 활동은 관심이 뜸해졌고 다시 천문동아리에 기웃기웃 했습니다. 그때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나기도 했네요. 근데 복학 후부터 확실히 별을 보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집안에 이런저런 일들이 생겼었고, 어학연수도 다녀오곤 했었죠. 별을 보려는 것은 가끔 동아리 관측회나 나가는 정도였고, 관측회는 날짜를 미리 정하는 거니 날씨가 안좋아 술만 마시고 오는 경우가 많았죠. 제 8인치 반사 경통은 여전히 광축이 나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오히려 요즘이 레이저콜리메이터와 같은 부자재가 더 저렴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에는 다른데 돈쓰기에 바빴고, 별상을 보며 광축을 맞추자기에는 가대가 부실했었습니다.
이윽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간다는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뚜벅이가 8인치를 갖고 다니는 것은 무리이다 싶어서, 8인치 반사망원경을 다른이에게 넘깁니다. 그러곤 빅센 vmc 110l과 skypod라는 goto 경위대를 구입합니다. 작은 막스토프 경통이 재미있긴 했습니다. 대학원 초반 간간히 늦은 밤에 집 근처 공터에 가서 행성 등을 보면 꽤나 똘똘한 상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다만 흔히 본다는 어두운 성운, 성단은 좀 무리가 있었고, 무엇보다 짜증나는 것은 skypod 경위대였습니다. 얼라인 맞추는 것도 답답하고, 대강 저쯤을 보면 대상이 있을텐데, GOTO로 한세월 천천히 움직여서 대상을 찾아가는데, 그마저도 얼라인이 잘 되어있을때 이야기이지, 몇번 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결국 skypod는 방출하고,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atz 경위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포르타를 갖고 싶었는데, 이게 더 저렴하고 튼튼했습니다. 속이 뚫리는 기분이더군요. 손으로 잡고 휙휙 돌려가며 대상을 찾는게 좋았습니다. 다만 막스토프 녀석이 초점거리가 길어서 너무 좁은 영역을 봐서 문제..
막스토프는 어지간하면 광축이 어긋나지 않는데 vmc110l은 어긋나더군요. 한 겨울 오밤중에 나왔다가 광축이 어긋난 것을 알고 일단 주경 나사를 풀려는데 안 움직입니다. 역방향 나사일리는 없는데 하며 살짝살짝 조이는 방향과 푸는 방향으로 드라이버를 돌리는데 나사가 부러지더군요. 황당했습니다. 나중에 봤더니 나사가 sus 재질은 아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렇게 망원경은 ㅅㄷ과학사로 보내졌고, 한달 뒤엔가 나사가 박혀 있으니 나사탭을 가공할 것인지, 아니면 부품을 구해와서 통채로 교체할 것인지 묻더군요. 어느 방법이든 상관없으니 가능한 방법으로 진행해달라 했었습니다. 그러고 연락이 없었습니다. 당시 연구실 생활이 지옥과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졌었고, 망원경은 머릿속에서 잊혀진채 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곤 나사가 부러진 그 모습 그대로 집으로 배송되어 오더군요. 모르죠. 그사이 외국 연구소에 나가있기도 했는데, 그때 연락이 왔었는지도요. 그땐 정말 연구실 일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경통은 버렸습니다. 이미 빅센은 제가 알던 빅센이 아니고, 중국제라 별 수 없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 이후 박사학위를 마칠 때까지 수년간 정말 별을 안보고 지냈습니다.
박사 학위 후 얼마전 떠나보낸 SE120을 들였습니다. 기차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충동구매였지요. 이 경통은 뭐, 이전에 이야기 했지만 재미난 녀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SE120과 ATZ경위대는 조합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광시야로 망원경을 휙휙 돌려가며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던 경통이었습니다. 경통 가격의 2/3나 되는 포커서로 교체할 생각도 있었고, 가볍게 볼 요량으로 계속 가지고 있어볼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행성이나 달 등을 색수차 없이 크게 확대해서 볼 망원경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중고 매물로 저렴하게 나온 6SE를 제가 들고 오게 됩니다. 참, 오랫동안 돌고 돌았습니다. 누군가는 6SE가 버킷리스트 수준이 되느냐 할 수 있을 겁니다. 좁은 광로에 1.25인치 아이피스, 2인치로 올려봐야 비네팅, 사진을 찍으려 해도 비네팅, 초점거리도 길어서 리듀서 끼고 카메라 해도 좁은 화각, 여전히 긴 f/수, 또 비네팅. 다 압니다. 그래도 그냥 좋습니다. 어릴적 공원에 놀러갔다가 다른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솜사탕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만 보는데 부모님이 내게도 사주시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부모님께 떼를 써서 60 mm 굴절을 가졌던 천문학자를 꿈꾸던 아이는, 20여년의 세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수정된 길을 걸어와 현재 다른 분야의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6SE 정도야 신품으로 사는 게 부담이 되거나 하지 않는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뜻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우연찮게 보게 된 중고 거래 글에 어릴적 기억이 되살아나 이제서야 갖고 싶었던 것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제 아들이 이걸로 제가 봤던 목성과 토성을 보게 되겠죠.
물론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습니다. SE120을 떠나보내야 했죠..가정의 평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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